사실 히브리서를 처음 읽은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지 20-30년 정도 지난 시기에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많은 고난 속에서도 곧 오시겠다고 하신 예수님을 믿고 견뎠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예수님이 안 오시자 믿음이 점점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초대교회 당시, 로마제국은 여러 신을 섬겼고 또 황제를 신격화했습니다. 이런 것들을 인정하지 않는 기독교인들은 언제나 정치적 핍박이나 사회적 위협 아래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경제적인 문제까지 겹쳐 살아가기가 도저히 곤란한 지경에까지 이르게 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는 고난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어떠한 명분을 강조하거나, 힘내고 참고 견디라는 내용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본질인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오랫동안 예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한테 우리들이 당하고 있는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예수님에게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고난 그 자체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 그리고 공생애, 십자가의 죽음 모든 것이 고난이었습니다. 무자비한 로마 병사들로부터 모욕과 채찍질을 당하셨으며 잔인한 십자가에 고난도 당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제자들로부터 버림을 받았고 심지어 하늘 아버지로부터도 잠시 버림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2장 1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기 위해서 친히 고난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의 백성으로 삼으시고자 하는 고난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고난을 당하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힘들겠다, 잘 견디라는 말 대신 너희가 겪는 고난을 예수의 관계 속에서, 구원의 관점에서 보라고 말합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상속자로 세우시기 위한 연단의 과정이 고난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욥이 그저 이유 없이 당한 고난을 잘 참고 견뎌서 하나님의 복을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아닙니다. 욥을 새로운 존재로 변화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 바로 고난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욥은 자신이 잃어버린 것의 갑절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욥이 그러한 존재로 성장하였다, 변화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눈이 달라져야 합니다. 해석의 기준이 달라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고난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우리를 계속 연단하십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상속자로 살아갈 수 있는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존재가 되기 원하십니다. 예수님이 고난을 통하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시켜 주신 것처럼 우리 또한 이 고난을 통해서 나 자신을 하나님의 자녀답게 연단시켜야 합니다. 그럴 때 고난은 주님을 닮아가려고 노력하는 기회가 되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굳게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명심할 것은 이 모든 것은 바로 고난의 자리에서 예수를 제대로 고백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입니다. 이 귀한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번호 | 제목 | 작성자 | 등록일 | 조회수 | 첨부 파일 |
---|---|---|---|---|---|
751 | 20241006 고난 앞에서 | 갈릴리교회 | 2024-10-16 | 103 | |
750 | 20240929 매달려고 한 나무에 달리다 | 갈릴리교회 | 2024-10-16 | 67 | |
749 | 20240922 왜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하셨을까? | 갈릴리교회 | 2024-10-16 | 59 | |
748 | 20240915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온다 | 갈릴리교회 | 2024-10-16 | 50 | |
747 | 20240908 예수님의 쉼이 된 사람 | 갈릴리교회 | 2024-10-16 | 60 | |
746 | 20240901 여호와께 범죄함이 없느냐 | 갈릴리교회 | 2024-10-16 | 56 | |
745 | 20240825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 갈릴리교회 | 2024-10-16 | 56 | |
744 | 20240818 내 아버지 다윗이 | 갈릴리교회 | 2024-10-16 | 52 | |
743 | 20240811 나는 생명의 떡이니 | 갈릴리교회 | 2024-10-16 | 46 | |
742 | 20240804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 갈릴리교회 | 2024-10-16 | 51 | |
741 | 20240728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 갈릴리교회 | 2024-10-16 | 50 | |
740 | 20240721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 갈릴리교회 | 2024-10-16 | 55 | |
739 | 20240714 그리스도 안에서 | 갈릴리교회 | 2024-10-16 | 46 | |
738 | 20240707 위도일손(爲道日損) | 갈릴리교회 | 2024-10-16 | 56 | |
737 | 20240630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 갈릴리교회 | 2024-10-16 | 5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