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장이 아로마와 할아버지 브르츠
2021-04-03 10:18:48
이미현
조회수   829

  아로마와 브르츠는 내 단골손님이다. 아니, 갈릴리 이용원 단골이다.

  아로마는 몽골 어린이이고 브르츠는 파키스탄 청년이다. 아로마는 지금 초등학교 4학년이다. 한국말을 아주 능숙하게 하기 때문에 그냥 보아서는 그저 개구장이 한국 꼬마 아이이다. 일요일 오후면 언제나 찾아와서 "아저씨 안녕하세요?"하며 인사를 하는데 아로마가 처음 갈릴리 이용원을 찾았을 때 나는 그 아이의 이름조차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알리'라고 불렀다.

  몽골 특유의 발음으로 혀 굴리는 소리로 몇 번인가 자기 이름을 가르쳐 주는데도 나는 그 발음을 알아듣지 못하고 ", 너 지금 뭐라 그랬니? 알 뭐라고? , 다시 한번 말해봐. 으응? 알리, 그래 네 이름 한번 좋다. 너 말이야 아주 남자답게 생겼다. 너는 알런지 모르지만 복싱선수 중에 '무하마드 알리'라고 아주 유명한 헤비급 권투선수가 있지. 너도 씩씩하고 활발하니까 나중에 꼭 유명해져라."

  "아르씨."

  ", 임마. 아르씨가 아니고 아저씨야."

  "아르씨."

  "~. 그래 네 이름 알리인 것 나도 알아."

  꼬마는 자기 이름을 알아 듣지 못하니까 이발을 하다가 벌떡 일어서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한참 기계로 꽈꽉 자르고 있는데..

  "야 야 야, 너 왜그래?"

  "아르씨, ~?"

  ", 알았어 임마. 네 이름 '알리' 라는 것."

  초등학교 2학년이나 되는 녀석이 내가 하도 자기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알리, 알리" 하니까 속이 타는지 이발 앞장을 휘휙 내리치면서 뭐라고 열을 내며 말을 하지만, 나는 아로마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가끔 그 녀석이 어떻게 지내나 궁금했지만, 세월은 휙 지나 일년 반만에 나는 다시 아로마를 만날 수 있었다. 아로마는 많이 자라 있었다. 키도 한 뼘이나 커있고 한국말도 이제는 능숙하게 구사했다.

", 너 알리 아니니?"

"아저씨, 안녕하세요?"

", 알리 너 참 오랜만에 나 보는거지? 그동안 아저씨 저 멀리 가 있어서 교회 나올수 없었단다. 그런데 너 말 많이 늘었다. 어디서 배웠니?"

"몽골학교에서."

", 너 몽골학교 갔다왔니?

"아니."

"그럼 임마, 몽골학교가 어디 있어? 교회에 있어? 뭐야, 갈릴리에 몽골학교가 있다고?"

나는 옆에 있는 집사님한테 물어보았다.

"우리 교회 몽골학교라고 있어요?"

"예 있어요. 창립된지 꽤 되었는데요."

"창립했다고요?

'창립'이란 소리를 들으니 굉장히 큰 학교가 머리 속에 그려진다.

"알리, 너 학교 나가니?"

", 학교 다녀요. 그런데 아저씨, 내 이름은 알리가 아니고 아로마에요."

"뭐라고? 아로마라고? 그런데 왜 그때는 알리라고 그랬니?

"아저씨가 못 알아들어서 그렇죠."

"맞다. 맞어. 그땐 너도 한국말을 할 줄 몰랐잖니."

  알리에게는 바로크라는 예닐곱 살 짜리 동생이 있는데 형 아로마를 무척 따른다. 일요일이면 형 뒤를 쫄랑쫄랑 따라다니다 넘어져서 울기도 무지하게 울지만 그래도 형의 뒤를 놓치지 않으려고 눈물콧물 질질 흘려가면서 열심히 쫓아다닌다.

"아로마, 너 이놈, 동생 자꾸 울리면 아저씨한테 혼난다."

"아저씨, 나 얘 때문에 미치겠어. 제대로 따라오지도 못하면서 계속 따라 다니잖아."

", 그래도 동생이잖아. 이 아저씨가 그럼 네 동생 데려간다."

"안돼!"

"왜 안돼, 임마."

"내 동생이니까."

"그럼 잘 데리고 놀아야지."

쫓아다니는 동생을 무지하게 귀찮아 하면서도 동생 머리가 조금만 자라도 데리고와서는 "우리 바로크 머리 좀 깎아주세요."하며 동생을 챙겨준다.

  브르츠는 서른 다섯 살의 파키스탄 청년이다. 머리가 많이 벗겨져 나는 언제나 그를 "그랜드파더 브르츠" 하고 부르면 "총각 불렀어?"하며 다가와서는 손가락으로 내 옆구리를 꾹 찌른다. 한국에 온지 삼 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아직도 한국말이 서툴러 나와 이야기 할 때는 손짓발짓 해가면서 춤추듯이 대화하지만 우리는 그 어떤 어려움도 없이 대화를 할 수 있다. 때론 한국어에 능한 외국인들의 통역을 받기도 하지만...

  그런데 브르츠는 무지무지 지저분한 녀석이다.

"이봐, 브르츠. 내가 말이야 다른 말은 안하겠는데 교회 오는 날만이라도 좀 씻고와라. 브르츠, 너 물이 없어 안씻는거냐?"

"아니야, 귀찮아서 그래. 아저씨, 나 많이 힘들어. 술 박스 두세 개 지고 두 층, 세 층 올라가야 해. 그래서 너무너무 힘들어. 씻는 것도 너무 힘들어서 못 씻는거야."

"그래도 그렇지. 이런 개으름뱅이야. 이게 뭐니, 머리카락도 몇 가닥 없는데 비듬이 이게 뭐냐. 너 이러다 아멘이 안되고 아미타블 된다."

"아미타블?"

"그래, 스님이 된다 그말이야. 그리고 옷은 이게 뭐니. 잠바 두 겹, 스웨터 두 겹, 그 속에 T셔츠까지.. , 밑에는 몇 개나 입었니? 아이고 나 미치겠다. 이거 완전히 산골 영감님 차림이잖아. 솜바지를 두 장 씩이나 껴입냐?"

"나 추워. 나 많이 춥단말야."

브르츠는 주류 도매상에서 일한다. 하루종일 밖에서 무거운 술 상자를 나르기 때문에 추위에 익숙치않은 브르츠는 언제나 옷을 두껍게 입고 다니는데

등치도 큼지막한 녀석이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이 산골영감님 언덕 올라가는 모습이다.

"브르츠, 너 화장실 가서 고추 꺼내는데 몇 분 걸리니? 옷을 너무 많이 입어 고추가 바깥까지 나오기나 하겠나."

"나 그래도 오줌 잘 눠."

엉덩이를 앞으로 쑥 내밀며 이렇게 하면 된다며 흉내를 내는데 옆에 있던 외국인들도 배꼽을 잡고 웃는다.

  좀 모자란 것 같은 브르츠, 똑똑한 아로마.

주일이면 언제나 찾아와서 "아저씨, 안녕하세요?" 하며 인사할 때면 내 동생, 내 조카 같다.

오늘도 장난치지 말라고 윽박지르고 깨끗이 씻고 다니라고 구박주지만 이제 우리는 서로 마음이 통한다.

  갈릴리의 아들 아로마, 갈릴리의 형제 브르츠.

이들은 주일이 기다려진단다. 한국 학교에서 친구들을 사귀고, 술 도매상에서 무거운 상자를 나르며 한국을 배워가지만,

그들은 갈릴리가 있어서 좋고 언제나 일요일만 있었으면 좋겠다던 이들.

오늘도 주일을 기다리며 꿈을 키우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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